몽당연필

소운 이봉하 선생 이야기: 항일 독립운동가 일대기

소운 이봉하 선생 이야기: 항일 독립운동가 일대기

항일 독립운동가 애국지사이신 소운 이봉하 선생 이야기입니다. 1919년 당시 3.1 만세 운동이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자 허후득 선생과 함께 용현리 주민 50여명을 결집하여 보현산에 올라 횃불을 들고 격렬한 만세 시위 운동을 전개하다가 일경에 피체되어 옥고를 치른 서산의 위대한 항일 독립운동가입니다.

 

소운 이봉하 선생

소운 이봉하 선생은 석방 후 강직하고 과묵한 성격에 평소 자신의 독립운동 사실을 이웃은 물론,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았으나 허후득 선생의 후손 허룡 선생의 노력으로 이봉하 선생의 의기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어 2008년에 대통령표창을 수훈하시어 그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그 후에 터를 잡았던 서산 부석면 취평리에 선생의 애국 행적과 독립을 향한 열망을 기록한 기념비가 세워지며 그 정신이 후세에 널리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항일 독립운동가 일대기

서산의 위대한 독립운동가 이봉하 선생(李奉夏 1891~1969)께서는 숭고한 애국애족 정신과 남다른 민족애로 온 정신을 무장하고 삶을 살아가셨던 분입니다.

이봉하 선생님은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이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자 허후득 선생과 함께 용현리 주민 50여명을 결집하여 보현산에 힘차게 올라 횃불을 치켜들고 격렬한 만세 시위 운동을 주도 전개하였습니다.

이봉하 선생은 감옥에서 석방된 후 강직하고 과묵하신 그의 성품답게 평소 자녀들은 물론 주변 지인과 이웃들에게도 자신의 독립운동 사실을 알리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후득 선생의 후손 허룡 선생의 노력으로 이봉하 선생의 독립운동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봉하 선생의 공로가 인정되어 2008년 대통령 표창을 수훈하셨으며 현재 이봉하 선생께서 터를 잡고 사셨던 서산시 부석면 취평리에 이 선생의 숭고한 애국 행적과 집요한 항일 투쟁, 독립을 향한 열망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어 독립운동의 가치와 독립정신을 후세에 널리 전하여 주는 부석면 취평리의 자부심이자 자랑입니다.

국가보훈처 공훈 전사자료관의 독립유공자 공훈록 기록에 따르면 이봉하 선생은 1919년 4월 8일 충남 서산군 운산면 용현리 보현산 위에서 동리 주민들을 주도하여 횃불을 들고 독립만세운동 시위를 일으켰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이봉하 선생은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고 1919년 5월 1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고통스러운 옥고를 치렀습니다. 판결문은 공지지방법원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 편찬위원회) 제3권 155~156면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보는 이봉하 선생의 3.1 독립운동 공훈을 기려 2008년에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고 그의 공훈 기록은 국가보훈처에서 2010년 발간한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상으로 항일 독립운동가 이야기로 소운 이봉하 선생님의 일대기를 요약해보았습니다.